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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따우히드-4

알 따우히드-4

2024-05-16T17:43:23

알 따우히드 (하나님의 유일성)는 세계관 입니다.   전통적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알 따우히드는 “그 하나님 외에 신神이 없다 “ 는 확신이요 증언입니다. 극도로 간결하고 표면상 부정적인 이 언명은 이슬람 전체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풍부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때로는 한 문화, 한 문명, 혹은 한 역사 전체가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알 따우히드는 일반적인 실체 관, 진리 관, […]

이슬람의 세계관

이슬람의 세계관

2024-05-15T17:40:35

Originally posted 2023-12-30 20:08:19. 인류는 현재 아무리 좋게 봐주려 하더라도 경고를 받을만한 상황에 와 있습니다.       선의와 신앙을 가진 모든 사람의 관심과 적극적 대응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체념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나 그래 왔듯이 희망 정신은 이슬람에 필요 불가결한 핵심입니다. (예: 꾸란 12:87, 65:3 참조)       오늘날 우리에게 당면한 문제와 위기가 오직 현대에만 국한된 특이사항은 아닙니다. 이런 문제와 위기는 매우 난감하고 복잡하며 고통스러운 사실이고, 그 정도는 아마 이전 어느 때보다도 지금이 한층 더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시대와 지난 세기 사이의 차이는 근본적으로 ‘종류의 차이’가 아니라 ‘정도의 차이’입니다. 현대가 처한 곤경이 점점 복합적 문제가 되어 가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우리 기대와 능력 수준이 높아지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지난 수 세기 동안 여러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골치 아픈 위기는 본질에서 거의 같은 성질을 지니고 있습니다. 주로 생소하고 이질적이며 외래의 것에 배타적이며 편협한 태도를 완고하게 고집하기에 나타난 위기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인종주의, 엘리트 의식, 아집과 편견 그리고 이에 못지않은 여러 가지 불편한 흐름을 조장했습니다.       인류가 유례없는 위기를 맞고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습니다만, 인간이 현재 처해 있는 위기는 외부를 향한 물질적 탐구와 내면을 향한 윤리적 탐색 사이의 심각한 불균형에서 일어나는 현상으로 보입니다. 균형을 유지하여 중도를 표방하고 중용을 찾자며 이를 위한 운동을 하는 것이야 어렵지 않겠지만 이처럼 성취하기 어려운 일도 없습니다.       과거에는 사람이 빵만으로 살 수 없다는 말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물질적인 복지를 무시해도 좋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적이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을 오해한 나머지, 구제 불능의 운명론이나 인간의 자유와 자기완성을 부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영성과 하나님께 의탁을 지나치게 내세우면 필경 이에 대한 반동으로 물질주의와 합리주의, […]

신의 유일성 (알 – 타우히드)

신의 유일성 (알 – 타우히드)

2024-05-15T17:40:34

Originally posted 2023-12-29 18:57:53. 이슬람에서는 하나님의 내적 통일성과 외적 통일성을 알-타우히드 al-tawhid (신의 초월적 유일성)라고 부릅니다.   타우히드라는 용어는 인간이 직・간접으로 신을 대할 때, 모든 면에서 통일성과 초월성을 반영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한 분 이시고 유일하시며, 하나님의 존재와 행위에 동반자를 두지 않고 본질과 특성에서 유사한 존재가 달리 없으며, 신성과 예배 대상으로서 대등한 다른 존재가 없노라는 믿음입니다.       타우히드는 세가지 구성요소를 중심으로 하는데, 이 중 하나라도 빠질 때 에는 이슬람 신앙이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타우히드의 세 범주는 때때로 존재의 통일(타우히드 알-다트 Tawhid al-Dhat), 특성의 통일(타우히드 알-시파트 Tawhidal-sifat), 행위의 통일(타우히드 알 아팔 Tawhid al-Afal)등으로 불립니다.   꾸란에 따르자면, 신의 통일성은 존재 Dhat에서 절대적 유일이고, 특성 Sifat에서도 절대적 유일이며, 행위 Afal에서도 절대적 유일이라는 의미입니다.   존재의 유일성이란 신이 복수가 아닐뿐더러, 신격도 역시 복수가 아니라는 뜻 입니다. 특성의 유일성은 어떤 존재라도 신의 특성을 갖지 않는다는 뜻이며. 행위의 유일성이란 어떤 존재라도 신이 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타우히드의 세 범주는 후세 신학자들이 구체적 이름을 붙였을 뿐 꾸란에서 유래한 것으로, 꾸란에 충실한 용어입니다.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서 신을 인식하는 개념은 피조물인 인간에 의해서 다소 제한된 측면이 있습니다.   이슬람은 초월적이고 지고한 존재이자 세상만물을 관장하는 전능한 신이 (다른 종교에서 신에게) 인간이 부여한 어떤 피조물에 대한 속성까지도 넘어서는 존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인간이나 다른 피조물이 지닌 어떤 한계에도 제한되지 않는 존재가 바로 신입니다.   신은 신체를 지니지 않으며, 어떤 신체적・물리적 속성, 특징, 양상이라도 지니지 않습니다. 신의 특성은 무한하고 절대적입니다. 어떠한 한계, 약점이나, 부족함이 없으며, […]

이슬람과 신의 의인화

이슬람과 신의 의인화

2024-05-15T17:40:33

Originally posted 2023-12-28 17:35:11. 이슬람에서 신(神)은 홀로 계시고. 초월적이며 장엄하십니다.   이슬람 신앙은 엄격하고 타협이 없는 윤리적 일신론의 특징을 지니는데, 이는 가장 고상하고 순수한 의미에서 신의 절대적 유일성, 통일성, 초월성을 고수한다는 뜻이며, 공식적으로 그리고 일관되게 모든 다신론, 범신론, 이원론, 단일우상숭배, 택일신론, 삼신론, 삼위일체론 등을 제거하고, 신성의 개념 안에서 어떤 인간적인 요소개입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뜻 입니다.   따라서 주류 이슬람은 모든 신체주의 개념과 신의 존재를 의인화하는 형상을 배격하고, 신의 절대적 초월성과 통일성을 강조해온 것이 보편적 진실입니다.       이슬람의 초월성 이해는 철학에서처럼 추상적이지 않아서, 꾸란은 초월적 신성을 생생하게 표현하고, 신과의 의미 있는 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해 신을 묘사하는데 에 양태성(樣態性)을 조금 허용함으로써, 그 덕분에 우리는 시적 표현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인간의 의사소통에 있어서 이 정도 양태성이면 충분할 것입니다.       꾸란에서 글자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일 때 신성의 의인화를 느껴질 수 있는 구절이 있는데, 이 때문에 이슬람 신학자들은 수 세기 동안 논쟁을 해왔습니다. 이슬람 학자 대부분은 신의 ‘손’, ‘얼굴’, ‘눈’ 등을 언급한 몇몇 문장을 소위 빌라 카이프 bila kayf (글자 그대로는 ‘이렇게 가 아니면 어떤 식으로’지만, 비유적으로는 ‘하나님의 장엄과 초월성에 어울리게’라고 해석할 수 있다)나 은유로 해석합니다.   이런 문장을 빌라 카이프로서 받아들일 때 항상 신과 피조물 사이에 어떤 유사성(의인화)도 절대적으로 부인한다는 언급과 함께, 신의 타자성과 초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는 했습니다.       초월적이고 유일한 신의 윤리적 의지를 온전히 따르는 것이 이슬람입니다.   […]

라마단이란 무엇인가?

라마단이란 무엇인가?

2024-05-15T17:40:32

Originally posted 2023-12-27 17:14:46. 이슬람에는 영적・윤리적 성격 특징으로 단식 제도가 있습니다.   단식은 이슬람력으로 아홉 번째 달인 라마단 달 한달 동안 동트기 전부터 해 질 무렵까지 음식, 음료, 부부관계, 흡연 등을 완전히 삼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슬람 단식의 의의를 이런 사전적 의미에만 한정 짓는 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이슬람 단식은 미덕의 귀한 열매를 맺는 나무를 심고 키우는 격입니다. 이슬람 단식의 영적 의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슬람 단식은,   1. 진정한 사랑의 원칙을 가르칩니다. 하나님에 대한 깊은 사랑에서 우러나와 단식해야 하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곧 사랑이 무엇인지를 올바로 아는 사람입니다.   2. 희망을 불어넣고 낙관적인 인생관을 갖게 합니다. 단식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한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를 구하기 때문입니다.   3. 진정한 덕, 즉 효과적으로 헌신하고 정직하게 기여하며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덕을 심어 줍니다. 단식은 하나님만을 위해,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며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4. 방심 없는 건실한 양심을 배양합니다. 단식은 누가 보든 안 보든 하기 때문입니다. 단식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며, 또 누가 시킨다고 그만 두지도 않습니다. 단식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고, 남이 보든 안 보든 충실하게 양심을 지키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건실한 양심을 배양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

이슬람에 대한 왜곡-3편

이슬람에 대한 왜곡-3편

2024-05-15T17:40:31

Originally posted 2023-12-26 16:42:30. 이제 무슬림은 하나님의 명에 따라 이슬람을 바깥 세상에 알려야 했습니다. 그러나 원거리 통신체계나 신문 혹은 소위 대중매체라 할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방법은 오직 하나, 즉 직접적인 대인 접촉뿐이었고, 이는 국경을 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소규모의 비무장집단은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대규모 무장 보호 집단으로 행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이는 분명 군대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군대가 아니었습니다.       무슬림은 여러 시기에 여러 지역으로 국경을 넘었습니다.   이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잘 보아야 합니다. 어떤 지역에서는 로마와 페르시아라는 외세에 오랫동안 시달렸던 현지인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고, 또 다른 곳에서는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던 많은 사람에게 처음으로 이슬람을 권하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이슬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이슬람의 세금(구빈세)에 상당하는 헌금을 지불하도록 했습니다.       […]

이슬람에 대한 왜곡-2편

이슬람에 대한 왜곡-2편

2024-05-15T17:40:30

Originally posted 2023-12-25 15:59:52. 다음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진정 하나님께서 믿는 이들을 지키시니, 정녕 하나님께서 배신하는 불신자를 좋아하지 않으시니라. 전쟁을 허락하심은 악행 때문이니, 하나님 도움이시며 강하시도다. 하나님을 주님이라 말한 이유만으로 부당하게 쫓겨났으니, 사람들 중에 한 무리를 세우지 않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무수히 찾는 수도원과 교회와 유대회당과 마스짇이 허물어지리라, 하나님의 도움이 돕는 이들에 있을 것이며 정녕 하나님은 무궁한 힘이로다. 그들이 이 땅에 보내졌을 때, 예배 드리고, 구빈세를 내며, 의를 명하고, 악을 금하나니, 모두의 끝은 하나님께 있도다.” (꾸란 22장 38 – 41절)   하나님께서 이렇게 허락하시자 무슬림은 더 이상 박해나 압제 당하지를 않았습니다. 평온을 다시 찾고 평화와 자유를 회복하며 자기 가족과 재회하고 재산을 되찾기 위해 대항을 했습니다.   무슬림에게서 평화와 자유를 빼앗아 간 악의에 찬 이교도들과 전투와 전쟁을 벌였습니다. 하지만 그 와중에서도 먼저 공격하거나, 집, 농작물, 보급품 등을 파손한다든지, 비 전투원인 아이, 부녀자, 무능력자를 죽이는 일 따위는 결코 하지를 않았습니다. 무슬림은 이들 규정을 지켜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제한을 벗어나지를 않았는데, 이는 전무후무한 일이었습니다. 무슬림은 이러한 제약 아래에서 싸워야 했습니다. 바로 이러한 하나님 원칙과 지시 하에서 마지막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이글거리는 아라비아 메마른 사막에서 출현하여 로마와 페르시아 속령을 정복하고, 대담하게도 유럽 성벽을 에워쌌던 ‘잔인한’ 무슬림을 다룬 이야기나 기록은 상당히 많습니다.   무슬림은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무력으로 이슬람을 전파하려는 종교적 열망에 따라 움직였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반면, 이슬람은 본질상 강요할 수 없으며, 설령 피정복민에게 이슬람을 강요했더라도 오랫동안 존속할 수 없었을 테고, 정복한 지역에서 비무슬림을 축출했을 것이기 때문에 이런 견해를 어리석다고 보는 사람들도 꽤 많습니다.   이슬람은 가는 곳마다 살아남았을 뿐 아니라 비무슬림 토착민들과 공존했다는 사실은 역사가 증명합니다   게다가 일반적으로 이슬람이 강요된다면, 새로운 지역에서 강제로 무슬림이 된 사람들은 신실한 신자가 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패배한 사람들이 훌륭한 무슬림이 되기 위해서는 강요 이상의 것이 필요하며, 이들이 ‘강요된’ […]

이슬람에 대한 왜곡-1편

이슬람에 대한 왜곡-1편

2024-05-15T17:40:29

Originally posted 2023-12-24 15:38:28. 이슬람에 대한 왜곡과 오해를 제대로 조명해서 진실을 밝히려고 합니다 만 하지만 알리는 과정에서 누군가에게 비위를 맞추거나, 비난하거나 또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는 의도는 없습니다.       이슬람에서 그런 행위는 용납하지를 않습니다. 이슬람은 정도를 걷는 생각과 행동을 요구합니다. 진실을 밝히고 알리면서 사람들 인식을 새롭게 하고, 지적이고 책임을 아는 합리적인 존재답게 각자가 스스로 보고 결정하도록 돕는 것이 이 글을 올리는 의도입니다.       우리는 종종 충격적인 기사나 논평을 접합니다.   ‘성전’, ‘반 그리스도 이슬람’, ‘일부다처제’, ‘이혼’, ‘이슬람에서 여성 지위’ 등등이 자주 거론되는 주제입니다. 진실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악의까지야 없겠지만 오해하고 있는 정직한 사람들을 위해 이 주제에 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전 (지하드)   이슬람이 칼로써 전파되었을까요? ‘꾸란 아니면 칼’ 이란 것이 무슬림들 상징이었을까요? […]

히브리 성서와 의인화

히브리 성서와 의인화

2024-05-15T17:40:28

Originally posted 2023-12-23 14:55:05. 히브리 성서와 유대교에 나타나는 신(神)을 이해하는 관념은 초월성과 의인화를 혼합한 것으로 보입니다. 히브리 성서에서 신은 초월적 존재이면서 동시에 구체적인 인간 형상으로 등장합니다.       히브리 성서 전체에서 이 두 가지 극단적 경향 혹은 흐름은 서로 겹쳐서 나타납니다. 고대 선지자들은 의인화적 표현을 줄이면서 신성의 초월적 요소를 더 강조하려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지만, 구약성서는 거의 모든 장에서 신을 의인화한 표현이나 흔적을 볼 수가 있습니다. 히브리 성서의 유신론 개념은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       히브리 성서의 여러 부분에 등장하는 신의 개념은 애니미즘, 다신론, 택일신론 henotheism (역주: 擇一神論, 여러 신의 존재를 상정한 후, 그 중 하나의 신을 집단의 수호신으로 모시는 것), 일신숭배 monolatry (역주: 一神崇拜, 여러 신의 존재를 상정한 후, 그 중 하나의 신이 가장 위대하다고 평가하여 모시는 것. 자신들이 특정 신을 선택했을 뿐, 원래는 여러 신이 동등하다고 보는 것에서 택일신론과는 다르다), 민족신론, 보편적이고 윤리적 유 일신론 등으로 다양합니다.       […]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4편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4편

2024-05-15T17:40:27

Originally posted 2023-12-22 13:22:40. 예수 시작을 놓고 이론이 분분했으며, 최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예수는 최후까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성서와 지혜와 그 분명한 징표와 성령에 의한 불굴 의지로 자기 사명을 완수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진심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극히 적었습니다.   예수는 관대하고 온화했지만, 이스라엘인의 자손들은 위선으로서 율법 정신을 저버리고 문자 속에서만 집착을 했습니다. 이런 것을 예수는 참을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인 자손들은 예수를 배척하고 반대했습니다. 실제로 그를 잔혹하게 죽이려는 음모까지 꾸몄습니다. 이스라엘인은 선지자 중 일부를 배척하고 죽인 사례가 있었는데, 예수도 여기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을 뻔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자손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믿었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실제 사건의 극화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려는 음모가 있었고, 실제 십자가형이 집행되었습니다. 누군가 형을 당한 것은 사실이지만 예수는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예수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직접 구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잔혹한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구하시려 하늘로 높이 올리셨고, 그것으로써 지상에서 예수가 맡은 마지막 사명을 장식했습니다. 여기에서 예수 영혼만 높아진 건지, 영혼과 육체 모두가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갔는지, 아니면 그가 자연사한 후에 영혼만이 올라갔는지는 꾸란에서 밝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슬림에게 중요한 점이라면 하나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고 하나님께 올려졌다고 계시했습니다.   꾸란은 예수 최후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성서의 백성들이 하늘에서 계시를 내려달라고 그대에게 요구할 것이니, 하나님을 모든 군중들에게 보여주도록 하는 기적을 모세에게 요구했었으니, 현혹에 얼이 빠졌노라. 명백한 징표를 받았음에도 송아지를 섬기었으나 용서하시어 권위와 증거로서 모세를 보냈도다. 서약으로서 그들 위로다 산을 올리고 말했나니 ‘문으로 들어 절하라’ 또 말했나니 ‘안식일을 어기지 말라.’ 이렇게 그들 서약을 엄숙하게 받았노라. 저들이 계약을 어기면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징표를 부정했으며, 선지자들을 부당하게 살해하면서 말함에 ‘우리 마음이 가쳤으니.’ 아니로다, 하나님께서 그들 마음을 불신으로 봉하셨으니, 오직 몇몇만 믿으리라.   불신으로 마리아에 큰 거짓을 말하니 […]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3편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3편

2024-05-15T17:40:26

Originally posted 2023-12-21 11:20:18. 인류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주제라면 바로 예수입니다.   예수는 신이었을까요? 아니면 단지 인간에 불과했을까요? 혹은 반신반인이었을까요? 실존했던 인물일까요? 혹 보통 사람처럼 부모에게서 태어난 것은 아닐까요? 정말 크리스마스 무렵에 태어났을까요? 종교와 관련 없이 이 같은 여러 질문이 끊이지 않고, 이 문제에 관한 논쟁과 토론은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계속됩니다.   이와 관련한 해석 차이로서 다양한 그리스도교 교파가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교인과 그리스도교인 모두가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데, 여기에서 이슬람 입장은 어떨까요? 이슬람이 이 골치 아픈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 생애에서 중요한 내용, 즉 어떻게, 언제, 어디에서 태어나 살고 계시를 받았으며 죽어서 매장되었는지, 정말 ‘기적’을 행 했는지, 또 했다면 어떤 기적이었나, 또 정말로 죽음으로부터 부활했는가, 그렇다면 언제 어떻게 부활했는가 등에 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를 않습니다. 지면도 부족하려니와 논의 성격이 모독적이거나 명예를 훼손하는 감이 있기에 이런 세부적인 논의는 하지 않겠습니다.   논의에 앞서 세 가지 점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첫째, 무슬림은 예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입니다. 이슬람은 예수가 실존했을 뿐 아니라 도덕적이며 굳건한 신앙을 가졌노라 는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종교, 선지자, 계시, 인간애에 관한 무슬림 인식에 따라 예수를 역사적 사실이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말씀들을 전한 특별한 선지자 중의 한 분으로 받아들입니다. 여기에서 분명히 해야 할 점은, 예수를 받아들이는 것은 이슬람 기본신앙이며, 무슬림이라면 결코 예수를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셋째, 여기에 언급하는 것은 모두 꾸란을 그 출처로서 합니다. 예수를 바라보는 관점이 그리스도교와는 다르지만, 이슬람에는 결코 예수님 역할이나 특성, 위대함을 과소평가하거나 깎아 내리려는 의도가 없습니다. 반대로 이슬람은 예수를 매우 존귀한 존재로서 여기며 하나님께서 친히 천거하신, 높은 지위에 있는 존재로 생각합니다.   예수가 태어나서 자라난 당시 환경은 매우 주목할 만합니다. 예수를 맞이했던 그때 사람들은 몇 가지 특성을 가지고 있었는데, […]

이슬람에서의 여성관은?-4편

이슬람에서의 여성관은?-4편

2024-05-15T17:40:25

Originally posted 2023-12-20 10:15:50. 남성과 여성문제에 대해서 이슬람이 취하는 태도는 인간성과 직결되며 이유가 타당한 경우 남녀평등권을 인정하며 차별이 당연한 것이라면 차별을 둡니다.   이슬람이 남녀를 차별하는 두 가지 뚜렷한 경우는 유산의 처분과 가장의 주도권입니다. 유산에 대해서 이슬람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남성에게는 여성 두 사람에 해당하는 몫을 나누어 주라.”   이 구절은 당연하고도 정당하게 여겨집니다. 모든 재정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것은 남성이기 때문에 여성은 자신 가족을 부양해야 할 경우를 제외하면 자기비용을 제외하고는 누구를 위해서도 돈을 소비할 책임이 없습니다.   이슬람사회에서는 여성이 가족을 부양하게 되는 경우가 극히 드뭅니다. 여성에게 먼 친척이라도 있기만 하면 여성이 자기가족을 부양 할 책임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배려가 여성 해방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부당하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런 근거로서 빈약한 가정과 편견에 쌓인 주장을 버린다면 문제는 아주 간단합니다. 여성은 전체 유산 가운데 자신을 위해 소비할 1/3 정도를 상속받을 수 있으며, 남성은 자기의 부인이나 가족과 어린이들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전체 유산의 2/3을 물려받게 됩니다. 수학적인 면에서 보면 남성에게 돌아가는 부분이 많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돈을 자신을 위해서만 소비하고 결혼을 하고 가정을 이루려고 하지 않는 정상적이지 못한 남성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어떤 은혜로써가 아니라 도덕적인 의무로써 여성인 자신의 부인을 포함해서 자신의 가족에 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는 것은 남성입니다.   만일 부인이 자기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면 남편은 그 부인 동의가 없이 그 재산을 처분할 수 있으며 부인이 재산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남편은 부양해야 할 의무가 있으므로 부인은 자기 재산으로 생계비를 지출할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남편이 이런 의무를 거절하거나 그 수입에 비해 너무 인색하다면 부인은 재판을 청구하고 남편으로부터 생활비를 받고 이혼할 수가 있습니다. 남편으로서 책임을 고려한다면 남성이 여성에 비해 두 배를 갖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유산 상속에선 남성보다 적게 차지하는 것을 부당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슬람은 유산 분배에서도 같은 비율을 적용합니다. 이슬람에서 시행되고 있는 법은 인류가 만든 법률 중에서 가장 공평합니다. 즉 “모든 사람에게는 그의 필요에 따라서”라는 원칙이 적용되는데 이것이 얼마나 훌륭한 원칙인지를 잘 생각해 보십시오.   필요를 결정하는 것은 그 사람이 져야 하는 사회적인 책임이 표준으로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수입에 대해서는 남녀구별이 없습니다. 임금이나 이익, 토지수익 등에도 남녀 차이가 없습니다. 이슬람은 노동과 그에 따른 임금적용에 있어 남녀가 동등하며, 어느 한 쪽도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습니다. 이슬람에 있어서 여성가치는 남성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임이 밝혀졌습니다.   이슬람에서 여성 두 사람 증언이 남성 한 사람 증언과도 같은 가치로 인정되는데 이것이 여성가치가 남성가치 절반 밖에 되지 않음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증인이 피고에게 유리하든지 불리하든지 간에 사실과는 무관한 모든 곡해를 막고 또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법정에서 증언의 순수성을 얻고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처사입니다.   여성은 선천적으로 매우 감정적이고 감동하기 쉬워 관련되어 있는 사건의 진실에서 벗어나 지엽적인 데로 흐를 수 있으므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한 사람이 틀리면 다른 사람이 기억할 것이다.”라는 격언처럼 여성을 한 사람 더 증인으로 채택하는 것입니다. 피고가 매력적인 여성인 경우 여성 증인으로 하여금 질투심을 일으키게 하여 거짓 증언을 하게 할지도 모르고 피고가 젊은 남성이기 때문에 그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 증언 석에 있는 자식을 가진 여성이 거짓 증언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또는 어떤 사건의 증인으로 나온 두 여성이 똑같이 거짓 증언을 함으로써 잘못을 저지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판단되며 두 여성 중 한 여성이 사실을 잘못 알고 있다면 다른 여성이 정정한 것으로 간주할 수 있습니다, 덧붙여서 만약 증인으로 나온 여성이 여성 병에 대한 전문가이며 그 여성이 여성병과 관계 있는 사건의 증인으로 나온다면 증인은 한 사람으로 족한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인 가정 주도권에 대해서 살펴보자면 남성과 여성 그리고 아이들로 구성된 공동생활인 가족의 일들을 의무감을 갖고 처리할 관리자가 필요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모든 사회조직처럼 가정도 책임감과 지도력을 필요로 하며 이런 지도력이 없는 경우에는 필연적으로 무정부상태가 도래할 것입니다. 또한 그것은 결국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가정 주도권에 대해서는 세가지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남자가 가장이 되는 것이요, […]

이슬람에서의 여성관은?-3편

이슬람에서의 여성관은?-3편

2024-05-15T17:40:24

Originally posted 2023-11-29 10:47:22. 부부 사이에서 사랑과 평화가 깃들어 있는 성공적인 결혼이라면 법 보호와 판결이 불필요하며 법에 의존할 필요는 더욱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불화가 있을 때에는 해결하기 위하여 법에게서 도움 받아야만 합니다.   법이 공정성을 잃으면 안됩니다. 양 편 중에서 어느 한쪽을 옹호함으로써 다른 편에 손해를 끼쳐서는 안되며 가능한 모든 사태를 예상해야만 합니다. 다시 되풀이하면, 어떤 법률이라도 인간생활에서 발생되는 모든 경우를 내포할 수 없으며 문자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적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주장이 제기되어있는 부인들의 의무에 관한 이슬람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슬람법에 규정되어 있는 부인 법은 세 가지 사항을 고려하고 있습니다. (1) 이러한 의무는 여성에 대해 부당한가? (2) 이러한 의무는 한쪽에 치우친 것이며 편견은 아닌가? (3) 이러한 의무는 여성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은 것인가?   부인은 남편에 대해 세 가지 중요한 임무를 지니고 있습니다. (1) 남편이 잠자리를 원 할 때에는 응해야만 한다, (2) 남편이 싫어하는 사람이 남편 잠자리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 (3) 남편이 부재중일 때 신의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이 세 가지 임무 중에서 첫 번째에 대해서는 설명이 좀 필요하다는 생각입니다. 그 이유는 너무도 명백한데, 남성 신체구조는 성적만족을 얻음으로써 성욕 압박감에서 벗어나 실제생활에서 자기임무를 부드럽고 효과적으로 이끌 수 있게 합니다. 남성 경우에서 특히 젊었을 때는 성적 본능에 강하게 지배 받으며 여성에 비해 더 많은 성적만족을 갈구합니다. 그러나 사실 성적으로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강하며 표현이 없을 뿐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남성보다 더 강하게 성적만족을 원합니다.   결혼은 남성에게 정신적, 심리적, 사회적, 경제적 생활욕구를 충족시켜줄 뿐만 아니라 남성 본능을 충족시켜 줍니다. 문제는 만약 남편이 자기부인과 잠자리를 함께하기를 바랄 때, 부인이 냉정히 거절하고 무시한다면 남편은 어떻게 할 것인가? 다른 여성과 부정관계를 가질 것인가? 그러나 어떤 사회도 그런 경우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부인 자신도 어떤 불운한 환경에 처해 있더라도 자기 남편이 육체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다른 여성에게 매료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남편이 잠자리를 함께 하기를 원할 때 부인이 거절하는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경우가 있을 수 있습니다. (1) 남편을 싫어하며 남성과 접촉하고 싶지 않을 경우 (2) 남편을 사랑하지만 행위 자체를 싫어함으로써 거절하는 경우 (3) 사랑스러운 여성일 뿐만 아니라 행위를 싫어하지 않으나 특별한 때 접촉을 싫어하는 경우   이 같은 세 가지 경우 가운데 첫 번째 경우는 영구적이며, 아무리 시간이 흐른다고 해도, 또 어떠한 조치를 취한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을지 모릅니다. […]

이슬람에서의 여성관은?-2편

이슬람에서의 여성관은?-2편

2024-05-15T17:40:23

Originally posted 2023-11-28 09:58:41.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럽의 남성들이 우월감을 쉽게 버리고 여성들에게 대한 존경심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성들은 여성들과의 싸움에서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사용함으로써 거칠고 힘든 투쟁을 겪은 후에야 여성에게 어쩔 수 없이 평등권을 허락하였던 것입니다. 여성 권리를 찾으려는 이 싸움에서 여성은 파업과 협조를 병행하여 싸워왔으며 여성 들 주장을 알리기 위해 대중들에게 연설을 하거나 신문을 이용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런 후 여성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확실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입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투표권을 요구하였으며 피선거권을 요구하기도 했습니다. 남성들과 비슷한 직무에 종사하기 위한 교육을 마치고, 여성들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행정부에 참여하게 해 줄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여태까지의 내용이 유럽에서 여성의 권리획득을 위한 투쟁사입니다. 이러한 여러 종류의 투쟁사들은 실제로 서로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 중에서 남성이 관련 되 었는지 나 아닌지는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며 여성 스스로 자신들이 남성 권력자와 지도자의 위치로부터 새롭게 이룩한 사회질서 속에서 남성과 마찬가지로 무력하다는 것을 곧 깨닫게 되었습니다.(주 1) 「주 1. 경제적인 요건이 삶을 결정짓는 실제적 요건인 것과 마찬가지로 유럽의 여성 권리 획득 과정에서 경제적인 요건이 결정적인 요건이라는 점은 인정되나 어떤 경우에 있어서도 남성이 여성을 부양해야 하며, 여성이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경우에 있어서도 남성과 같은 임금을 받을 평등권을 인정하고, 긴급사태에 대처하기 위하여 일부다처를 인정하는 이슬람의 생활이념과 체계를 가졌더라면 사태는 달라졌을 것이라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요람이라는 영국에서는(비록 영국의회에 많은 훌륭한 여성의원이 많지만) 오늘날까지 행정부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적은 보수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면 누구나 놀랄 것입니다.   이슬람에서 여성 지위를 살펴보기 위하여 서구에서와 같이 여성들이 자신권리를 찾기 위해 무기를 들게 하였던 역사, 지리, 이념, 법적인 상황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런 동양의 여성권리 옹호자들이 집회 장소에서 열정적으로 외쳤던 것이 아무런 뜻도 없이 단지 서구 사회의 경우를 모방하였던 것인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이슬람은 그 체계를 이루는 기본적인 원칙으로서 여성도 한 인간이며 남성과 꼭 같은 영혼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 인간들이여! 태초에 한 인간을 만드시고 다음에 그의 배우자를 만드셨으며 이 두 사람으로부터 수 많은 남녀를 탄생케 하신 하나님께 대한 의무를 잊지 말지어다.” 〔꾸란 4장 안 니싸아 1절〕   이와 같이 남성과 여성은 그들 근원과 그들이 죽은 후에 돌아갈 곳이 똑 같은 것이며 이슬람은 생활과 명예와 재산 문제에 있어서 남성과 같은 권리를 여성에게 부여했습니다. 여성은 존경 받아야만 할 존재이며 그 누구라도 여성을 비방하거나 헐뜯도록 허락되지를 않았으며 누구도 여성을 관찰하거나 여성의 기능 때문에 멸시해서도 안됩니다. 남녀간에 구별과 차이를 두지 않는 것은 남녀가 서로 누릴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것입니다.   이것에 관해 규정된 법은 남녀에 대해 똑같이 적용됩니다. “오, 믿는 자들이여! 그대들 중 누구든 다른 사람을 비웃지 말지어다. 후자가 전자보다 더 훌륭할지도 모르리라. 서로 비방하거나 헐뜯지 말 것이며 상대방을 헐뜯는 별명으로서 부르지 말지어다.” 〔꾸란 49:11〕   “… 그리고 서로 염탐하지를 말고 등 뒤에서 욕 하지도 말지어다.” 〔꾸란 49:11〕   “오, 믿는 자들이여! 타인의 집을 방문할 때는 먼저 집안에 있는 사람에게 인사를 하고 출입을 허용할 때까지는 그 집에 들어가지를 말지어다.”〔꾸란 24:27〕   전언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떤 무슬림이라 할지라도 다른 무슬림 생활이나 명예와 재산을 불법으로 차지해서는 안 되니라.”고 하셨습니다. […]

이슬람에서의 여성관은?-1편

이슬람에서의 여성관은?-1편

2024-05-15T17:40:22

Originally posted 2023-11-27 07:07:58. 근래에 들어 동양에서는 여성의 권리, 더 나아가 남성과의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는 바람이 세차게 불어 닥치고 있습니다.       여성 권리를 주장하는 사람 중에는 이슬람이 모든 점에 있어서 남녀평등을 유지해 왔다고 단언하는 지나친 옹호론자가 있는가 하면 이슬람에 대한 무지와 편견에 갇혀서 이슬람은 여자를 지적으로 열등하게 하며 동물과 같은 위치에 놓이게 함으로써 여성의 지위를 낮추었기 때문에 여성의 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여성이란 단지 남성을 위한 성적인 충족 수단이며 자식을 만드는 기계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모든 면에서 남성이 여성보다 상위권을 가짐으로써 여성이 남성에게 예속되어 있다고 알게 합니다. 이런 부류의 사람들은 모두 이슬람에 대해 조금도 모르고 있을 뿐 만 아니라 자신들의 무모한 계획을 앞세움으로써 사회의 부조화를 초래하며 불행의 씨앗을 뿌리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기만하고 옳고 그름을 억지로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슬람에서 여성 지위를 더 자세히 알아보기 전에 유럽에서 여성의 권리 확장운동을 펴 나간 과정을 살펴봄으로써 오늘날 서구사회의 결함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알아보겠습니다.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도 여성 존재는 보 잘 것 없다고 여겨져 왔습니다. 학자들이나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여성이란 대체 정신이나 지닌 존재인가?」, 「과연 정신을 지녔다면 그것 본질은 무엇인가?」, 「여성이란 인간에 더 가까운가, 동물에 더 가까운가?」, 「여성이 인간 정신을 지닌 존재라면 남성과 관계에서 사회적이나 인간적인 지위는 어떠한가?」, 「여성이란 남성 종으로 태어났는가, 아니면 종보다는 조금 더 나은 지위를 가져야만 하는가?」 등의 문제들이 많은 토론의 주제가 되어 왔던 것입니다.       이 같은 상황은 고대 희랍이나 로마제국 시대 사회구조에서 여성들이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던 때에도 여전히 변하지 않았으며 이 때 여성 지위향상은 일반적인 여성 지위향상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소수 특수한 사교계 여성들이나 수도에서 살고 있던 여성들 지위 변화에 불과했을 뿐입니다. 이 때 이런 여성들은 방탕하고 부유한자들의 향락과 편력대상에 불과했을 뿐이며 인간으로서 여성에 대한 존경심을 의미하지는 않았으며 남성 즐거움의 대상 이였을 뿐 그 이상의 것은 아니었습니다.   유럽에서 머물던 이와 같은 여성지위는 봉건주의 시대 동안에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무지했던 그 시대 여성들은 때로 사치와 방종으로 눈이 멀었으며 동물처럼 먹고, 마시거나, 아이를 낳고, […]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2편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2편

2024-05-15T17:40:21

Originally posted 2023-11-26 04:55:38. 예수 청년시절에, 요한이 엣세네 사회를 떠나 광야에서 혼자 머물고 있노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요한은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태복음 3:4)   그는 대중들에게 직접 설교를 하기 시작했으며, 완전하게 엣세네 형제 단 일원으로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긴 견습기간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대중운동을 시작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외쳤으며, 하나님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고 확신시켰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세푸스(Josepus)가 쓴 역사서에서 이 역사가 스승이자, 또 다른 은둔자에 관해 읽어보면 더 흥미로울 것입니다. 요세푸스가 설명하길 요한은 사막에서 금욕을 하며 삼 년을 보냈습니다. 이 동안 바누스(Bannus)라는 은둔자로부터 인도를 받았는데, 그는 나무에서 자란 것으로 옷을 해 입고, 들짐승이 먹는 것을 먹었으며, 계속 냉수욕을 하여 자기 몸을 청결히 하고, 또 단련시켰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은둔자들이 세운 공통된 전통을 따르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광야는 예전부터 다윗 등 여러 선지자들이 피난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머무는 유대인들은 외래 침략자들 점령과 사이비 신들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는 이교도 통치자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으니 이런 분위기에서 창조주 한 분께만 의존을 하고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유일신께 대한 숭배 요람이었고 사막과 광야에서 남들이 잘못 알고 있는 안전을 무시한 채 오직 한 분이신 실체에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황량한 광야에서는 모든 지원이 없어지고, 전능하시고 모든 생명체에 대한 계속적인 근원이시며, 모든 안전함에 대한 근간이신 하나님께 숨김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광야에서 벌이는 투쟁에는 두 가지 면이 있었습니다. 우선 자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자기자신과 내면 싸움이 필요하고, 두 번째는 앞에 보았듯이, 이런 행동과정을 선택하는 데는 다른 방식대로 살려는 하는 자 들과 반드시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첫 번째 투쟁은 두 번째 투쟁이 승리하느냐 마느냐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에 대한 신앙과 영혼을 증진하는 문제였습니다.   요한이 사람들을 부르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는 엣세네 행동양식 중에 중요한 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즉 “죽임을 당하더라도 자기 조직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라는 것 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로마 당국에서는 첩자들을 보내 쉽게 이 운동에 잠입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사도로서 직감력을 가지고 이 첩자들이 위장한 것을 보고 이들을 ‘독사의 족속’(마태복음 3:7)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 조카 예수는 이 운동에 가담했으며 아마도 가장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예수와 항상 동반한 바나바스는 예수, 그리고 또 다른 동료였던 맛디아(Mathias)와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독사 족속들’이 그가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또 그 운동이 살아 생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기 때문에, 예수에게 세례를 준 일에 크게 만족하였습니다.   요한이 예언한대로 헤롯왕이 자신을 죽였는데, […]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1편

이슬람에서 이야기하는 예수님-1편

2024-05-15T17:40:20

Originally posted 2023-11-24 16:17:30. 예수가 탄생하던 당시 실제 사회환경에 대해서는 요한이 죽임 당한 사건을 함께 언급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예수를 중심으로 전체 저항운동이 일어났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항을 시작하기 전 예수는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를 하며 보냈습니다. 당시 예수는30세였습니다. 유대 법에 따라서 이 나이가 되면, 남자는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대중에게 설교하면서 로마 통치자에 맞서 싸우자고 설교한 요한과는 달리, 예수는 공개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아주 신중한 준비가 필요했던 것 입니다. 이전 선지자들은 재난으로 끝을 마쳤으며, 최근 요한이 당한 죽음은 예수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습니다. 통찰력을 갖고 신중히 준비하여 유대인들을 조직하였습니다.   예수는 그 누구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이런 일로서 로마 당국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독사와도 같은 족속’들이 저항운동에 잠입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위험을 부담하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 이었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 열 두 부족을 전통적으로 나타내는 숫자와 똑 같이 열 두 제자를 두었습니다. 이들에게 애국자 70명을 휘하에 두어 따르게 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은 암 알 아레즈(Am Al Arez), 즉 마을에서 지척에 살며 잘 훈련된 유대인들을 언제나 근거리에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그들 모두를 최 측근으로 두었는데. 엣세네에 속한 공동체 농부들은 예수를 따르는 열성 추종자가 되어 그 명분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열성분자(Zealot)로 알려졌습니다. 성경을 따르자면, 열 두 제자 중에서 적어도 여섯 정도가 이 열성분자 이었습니다.   모세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확인하러 온 예수는 구약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호소를 하였습니다. “율법에 열성적이고 맹약을 지키는 자는 나를 따르게 하라.”(마카베오 2:27-31) 많은 사람이 등록하였고, 이들은 지하에서 활동하고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바르 요님(Bar Yonim)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광야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에서 단검을 사용 할 줄 아는 자들을 시카리(Sicarii, 단검술사)라고 불렀으며 경호원으로 지명된 사람들을 바르 예수(Bar Jesus), 즉 ‘예수 아들들’이라 불렀습니다. 역사 자료에서 이들 상당수가 언급 되었지만, 이들에 대해 신비로운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까닭으로 현재까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이해를 할 만 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추종자들 중에서도 가장 측근이었으며, 자기 신분을 로마 첩자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숨겨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명령하였다. “이제 누대에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누가복음 22:36) 그의 가르침과 기적에 감응 받아 추종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

헤르마스의 양치기서

헤르마스의 양치기서

2024-05-15T17:40:19

Originally posted 2023-11-23 15:28:14. 양치기서(The Shepherd)는 에페수스(Ephesus) 근처 파트모스(Patmos)에서 서기 88년에서 97년 사이에 헤르마스(Hermas)가 쓴 책입니다.   바나바스 복음서처럼, 이 책은 신의 유일성을 단언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일단 삼위일체 교리를 바울 기독교회 당국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다음, 그 책을 없애려는 노력을 공동으로 강구했는데 이 책은 서기 325년 니케아 공회의에서 결정한 금서 중에 한 권 이였습니다.   헤르마스는 요한이 복음서를 쓸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양치기 서를 썼던 것 같습니다. 혹자는 이 책이 그 전에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헤르마스가 신약성서 중 네 권의 복음서를 결코 읽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양치기서가 현존하지 않은 초기 복음서인 히브리 복음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도 주장 하지만, 헤르마스가 그 책을 쓴 경위를 전하는 이야기를 따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입니다.   니케아 공회의 때까지 헤르마스를 사도로 여긴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이 이 책을 인정하여 널리 이용했는데 서기 2세기 말 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가 이 책을 신약성서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리게네스(Origen, 185-254 A.D.)도 이를 계시서라고 여겼으며, 이 책은 4세기 중엽에서 사용 된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뒷부분에 위치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A.D. Tertullian, 160-220 A.D.)는 처음에 이를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몬타누스 주의자(Montanist)가 된 뒤에는 이를 부인하였습니다. 이라네우스는 이 책을 경전으로 인정했지만 케사리아(Caesaria)의 유세비우스(Eusebius)는 거부했는데 아사나시우스(Athanasius)는 367년 새로운 개종자들이 개인적으로 읽기에 적합한 책으로서 받아들였습니다.   페르시아 출신 기독교인 마니케아우스(Marichaeaus)는 그 책을 동로마로 가져갔으며, 단테(Dante)는 분명 그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 있습니다.   양치기서는 분명 무시할 수는 없는 책이었으며, 신을 염원하고 사랑하는 대다수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걸 계시로서 받아 들였습니다. 예수 가르침을 ‘헬레니즘화’하려는 초기 단계에서, 또 예수를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이 모세가 유대인들에게 가져온 가르침을 그분이 재건하고 확장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아직도 잘 알고 있던 당시에, 그 책이 쓰여진 것은 이들이 아직 구약성서를 믿고 따랐으며, 양치기서가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으므로, 그 책을 경전 속에 포함시켰습니다.   유대 율법을 더 이상 기독교인이 따를 필요가 없노라고 생각을 함으로서 나중에 ‘신약성서’라는 새로운 경전이 쓰여졌는데, 이 새로운 책과 구약성서 사이에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이슬람에서 여성의 지위-2편

이슬람에서 여성의 지위-2편

2024-05-15T17:40:18

Originally posted 2023-11-22 14:24:26. 이는 특별한 경우로 남성이 더 많이 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남자는 아내와 가족 그리고 가난한 친척을 온전히 부양할 책임을 집니다. 모든 재정적인 책임을 떠맡고 자신에게 딸린 사람을 충분하게 부양하는 것이 남자의 의무입니다. 또한, 자신이 속한 사회적 대의명분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것 역시도 남자 의무입니다. 남자만이 이런 재정적 부담을 짊어집니다.     둘째,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은 개인 비용과 사치품을 제외하면 재정적으로 책임이 없습니다. 여성은 재정적으로 안전할 뿐만 아니라 부양을 받습니다. 아내라면 남편이, 어머니라면 아들이, 딸이라면 아버지가, 누이라면 오빠나 남동생이 부양자가 됩니다. 의지할 친척이 없는 경우에는 상속받을 것도 없고 유산을 남겨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상속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지할 데 없는 여성이 굶어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습니다.   홀로 남은 여성을 부양하는 것은 사회 전체와 국가 책임입니다. 여성은 도움을 받을 수도, 직업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이 버는 돈은 당연히 전부 자기 것입니다. 여성에게는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부양할 책임이 없습니다. 남성은 같은 처지 있더라도, 가족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척이 있다면 부양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여성 책임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남성 책임은 더 큽니다.   셋째, 여성이 남성보다 덜 상속 받는 것은, 일한 대가를 박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속 재산은 노력에 대한 결과가 아닌, 외부로부터 넘어온 가외 재산입니다. 이는 불로소득입니다. 상속 재산은 일종의 도움이므로 이슬람 규정에 따라 다급한 필요와 책임을 고려해 분배해야 합니다.   한쪽에는 온갖 재정적인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상속자가 있고 또 다른 쪽에는 재정적인 책임이 전혀 없거나 적은 상속자가 있습니다. 만일 여성의 몫을 완전히 박탈한다면, 여성 역시 고인의 친척이므로 이는 부당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여성에게 동일한 몫을 준다면 부양 책임이 있는 남성에게 부당할 것입니다.   이슬람은 남성이 가족의 필요와 사회적 책임에 응할 수 있도록 두 몫의 재산을 상속하게 합니다. 이와 동시에 여성에게도 개인적 필요를 충족하도록 한 몫의 재산을 상속해 왔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슬람은 여성에게 더 많은 호의를 보입니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여성과 남성 권리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동등하다고, 평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꾸란 4:11 – 14, 176) […]

이슬람에서 여성의 지위-1편

이슬람에서 여성의 지위-1편

2024-05-15T17:40:17

Originally posted 2023-11-22 14:24:25. 꾸란과 초기 무슬림들 태도를 보면, 여성이 적어도 남성만큼 생명에 필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외래문화가 끼친 영향이 아니었다면 무슬림은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성과 남성 지위는 당연하게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연한 기정사실이었기에 아무도 문제 삼지를 않습니다. 이슬람은 다른 종교나 제도가 결코 허락하지 않았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