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5-16T17:43:23
알 따우히드 (하나님의 유일성)는 세계관 입니다. 전통적으로 간단히 말하자면 알 따우히드는 “그 하나님 외에 신神이 없다 “ 는 확신이요 증언입니다. 극도로 간결하고 표면상 부정적인 이 언명은 이슬람 전체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풍부한 의미를 내포합니다. 때로는 한 문화, 한 문명, 혹은 한 역사 전체가 하나의 문장으로 압축됩니다. 알 따우히드는 일반적인 실체 관, 진리 관, […]
2024-05-15T17:49:45
Originally posted 2023-11-26 04:55:38. 예수 청년시절에, 요한이 엣세네 사회를 떠나 광야에서 혼자 머물고 있노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요한은 약대털옷을 입고 허리에 가죽띠를 띠고 음식은 메뚜기와 석청이었더라.”(마태복음 3:4) 그는 대중들에게 직접 설교를 하기 시작했으며, 완전하게 엣세네 형제 단 일원으로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긴 견습기간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식으로 그는 대중운동을 시작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여호와께 돌아오라고 외쳤으며, 하나님 왕국이 곧 세워질 것이라고 확신시켰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요세푸스(Josepus)가 쓴 역사서에서 이 역사가 스승이자, 또 다른 은둔자에 관해 읽어보면 더 흥미로울 것입니다. 요세푸스가 설명하길 요한은 사막에서 금욕을 하며 삼 년을 보냈습니다. 이 동안 바누스(Bannus)라는 은둔자로부터 인도를 받았는데, 그는 나무에서 자란 것으로 옷을 해 입고, 들짐승이 먹는 것을 먹었으며, 계속 냉수욕을 하여 자기 몸을 청결히 하고, 또 단련시켰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은둔자들이 세운 공통된 전통을 따르고 있었음이 분명합니다. 광야는 예전부터 다윗 등 여러 선지자들이 피난을 하던 곳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머무는 유대인들은 외래 침략자들 점령과 사이비 신들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광야에서는 이교도 통치자들 눈치를 볼 필요가 없었으니 이런 분위기에서 창조주 한 분께만 의존을 하고 경배드릴 수 있었습니다. 이 곳은 유일신께 대한 숭배 요람이었고 사막과 광야에서 남들이 잘못 알고 있는 안전을 무시한 채 오직 한 분이신 실체에 의지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황량한 광야에서는 모든 지원이 없어지고, 전능하시고 모든 생명체에 대한 계속적인 근원이시며, 모든 안전함에 대한 근간이신 하나님께 숨김없이 드러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광야에서 벌이는 투쟁에는 두 가지 면이 있었습니다. 우선 자기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대로 살아가기 위하여 자기자신과 내면 싸움이 필요하고, 두 번째는 앞에 보았듯이, 이런 행동과정을 선택하는 데는 다른 방식대로 살려는 하는 자 들과 반드시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첫 번째 투쟁은 두 번째 투쟁이 승리하느냐 마느냐에 좌우되지 않고 오직 여호와에 대한 신앙과 영혼을 증진하는 문제였습니다. 요한이 사람들을 부르자 많은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는데 그는 엣세네 행동양식 중에 중요한 한 규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즉 “죽임을 당하더라도 자기 조직의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다” 라는 것 이었습니다. 이 때문에, 로마 당국에서는 첩자들을 보내 쉽게 이 운동에 잠입할 수 있었습니다. 요한은 사도로서 직감력을 가지고 이 첩자들이 위장한 것을 보고 이들을 ‘독사의 족속’(마태복음 3:7)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 조카 예수는 이 운동에 가담했으며 아마도 가장 처음으로 세례를 받은 것 같습니다. 예수와 항상 동반한 바나바스는 예수, 그리고 또 다른 동료였던 맛디아(Mathias)와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요한은‘독사 족속들’이 그가 싸움을 시작하기도 전에 성공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뿐 아니라, 또 그 운동이 살아 생전에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했기 때문에, 예수에게 세례를 준 일에 크게 만족하였습니다. 요한이 예언한대로 헤롯왕이 자신을 죽였는데, […]
2024-05-15T17:49:44
Originally posted 2023-11-24 16:17:30. 예수가 탄생하던 당시 실제 사회환경에 대해서는 요한이 죽임 당한 사건을 함께 언급했는데 여기에서 우리는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은 예수를 중심으로 전체 저항운동이 일어났다는 점을 알 수가 있습니다. 저항을 시작하기 전 예수는 사십 일 동안 광야에서 기도를 하며 보냈습니다. 당시 예수는30세였습니다. 유대 법에 따라서 이 나이가 되면, 남자는 아버지로부터 독립을 하게 됩니다. 대중에게 설교하면서 로마 통치자에 맞서 싸우자고 설교한 요한과는 달리, 예수는 공개적으로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아주 신중한 준비가 필요했던 것 입니다. 이전 선지자들은 재난으로 끝을 마쳤으며, 최근 요한이 당한 죽음은 예수 마음속에 생생히 남아 있었습니다. 통찰력을 갖고 신중히 준비하여 유대인들을 조직하였습니다. 예수는 그 누구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습니다. 공연히 이런 일로서 로마 당국으로부터 주목을 받을 필요가 없었을 뿐 아니라 ‘독사와도 같은 족속’들이 저항운동에 잠입하는 것을 막을 수가 없기 때문에, 결국 위험을 부담하게 될 수 밖에 없었을 것 이었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 열 두 부족을 전통적으로 나타내는 숫자와 똑 같이 열 두 제자를 두었습니다. 이들에게 애국자 70명을 휘하에 두어 따르게 하였으며, 바리새인들은 암 알 아레즈(Am Al Arez), 즉 마을에서 지척에 살며 잘 훈련된 유대인들을 언제나 근거리에 두고 있었습니다. 예수는 그들 모두를 최 측근으로 두었는데. 엣세네에 속한 공동체 농부들은 예수를 따르는 열성 추종자가 되어 그 명분을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되어 있었습니다. 이들은 열성분자(Zealot)로 알려졌습니다. 성경을 따르자면, 열 두 제자 중에서 적어도 여섯 정도가 이 열성분자 이었습니다. 모세 가르침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확인하러 온 예수는 구약성서 구절을 인용하여 호소를 하였습니다. “율법에 열성적이고 맹약을 지키는 자는 나를 따르게 하라.”(마카베오 2:27-31) 많은 사람이 등록하였고, 이들은 지하에서 활동하고 광야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이들은 바르 요님(Bar Yonim)이라고 불렀는데, 그 뜻은 ‘광야의 아들들’이었습니다. 이들 가운데에서 단검을 사용 할 줄 아는 자들을 시카리(Sicarii, 단검술사)라고 불렀으며 경호원으로 지명된 사람들을 바르 예수(Bar Jesus), 즉 ‘예수 아들들’이라 불렀습니다. 역사 자료에서 이들 상당수가 언급 되었지만, 이들에 대해 신비로운 장막이 드리워져 있는 까닭으로 현재까지는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이런 활동들은 이해를 할 만 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따르는 추종자들 중에서도 가장 측근이었으며, 자기 신분을 로마 첩자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숨겨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 “예수는 추종자들에게 명령하였다. “이제 누대에 있는 자는 가질 것이요 주머니도 그리하고 검 없는 자는 겉옷을 팔아 살지어다.”(누가복음 22:36) 그의 가르침과 기적에 감응 받아 추종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
2024-05-15T17:49:43
Originally posted 2023-11-23 15:28:14. 양치기서(The Shepherd)는 에페수스(Ephesus) 근처 파트모스(Patmos)에서 서기 88년에서 97년 사이에 헤르마스(Hermas)가 쓴 책입니다. 바나바스 복음서처럼, 이 책은 신의 유일성을 단언하였습니다. 이 때문에 일단 삼위일체 교리를 바울 기독교회 당국이 확고하게 뿌리내린 다음, 그 책을 없애려는 노력을 공동으로 강구했는데 이 책은 서기 325년 니케아 공회의에서 결정한 금서 중에 한 권 이였습니다. 헤르마스는 요한이 복음서를 쓸 때와 거의 같은 시기에 양치기 서를 썼던 것 같습니다. 혹자는 이 책이 그 전에 쓰여진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헤르마스가 신약성서 중 네 권의 복음서를 결코 읽지도 보지도 못했다는 사실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양치기서가 현존하지 않은 초기 복음서인 히브리 복음서에서 영감을 받았다고도 주장 하지만, 헤르마스가 그 책을 쓴 경위를 전하는 이야기를 따르면 받아들일 수 없는 주장입니다. 니케아 공회의 때까지 헤르마스를 사도로 여긴 예수의 초기 추종자들이 이 책을 인정하여 널리 이용했는데 서기 2세기 말 엽,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가 이 책을 신약성서 일부로 받아들였습니다. 오리게네스(Origen, 185-254 A.D.)도 이를 계시서라고 여겼으며, 이 책은 4세기 중엽에서 사용 된 시내 사본(Codex Sinaiticus) 뒷부분에 위치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A.D. Tertullian, 160-220 A.D.)는 처음에 이를 받아들였다가 나중에 몬타누스 주의자(Montanist)가 된 뒤에는 이를 부인하였습니다. 이라네우스는 이 책을 경전으로 인정했지만 케사리아(Caesaria)의 유세비우스(Eusebius)는 거부했는데 아사나시우스(Athanasius)는 367년 새로운 개종자들이 개인적으로 읽기에 적합한 책으로서 받아들였습니다. 페르시아 출신 기독교인 마니케아우스(Marichaeaus)는 그 책을 동로마로 가져갔으며, 단테(Dante)는 분명 그 책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바 있습니다. 양치기서는 분명 무시할 수는 없는 책이었으며, 신을 염원하고 사랑하는 대다수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걸 계시로서 받아 들였습니다. 예수 가르침을 ‘헬레니즘화’하려는 초기 단계에서, 또 예수를 따르는 많은 추종자들이 모세가 유대인들에게 가져온 가르침을 그분이 재건하고 확장하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아직도 잘 알고 있던 당시에, 그 책이 쓰여진 것은 이들이 아직 구약성서를 믿고 따랐으며, 양치기서가 자기들이 알고 있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으므로, 그 책을 경전 속에 포함시켰습니다. 유대 율법을 더 이상 기독교인이 따를 필요가 없노라고 생각을 함으로서 나중에 ‘신약성서’라는 새로운 경전이 쓰여졌는데, 이 새로운 책과 구약성서 사이에 모순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
2024-05-15T17:49:42
Originally posted 2023-11-22 14:24:26. 이는 특별한 경우로 남성이 더 많이 받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남자는 아내와 가족 그리고 가난한 친척을 온전히 부양할 책임을 집니다. 모든 재정적인 책임을 떠맡고 자신에게 딸린 사람을 충분하게 부양하는 것이 남자의 의무입니다. 또한, 자신이 속한 사회적 대의명분을 재정으로 지원하는 것 역시도 남자 의무입니다. 남자만이 이런 재정적 부담을 짊어집니다. 둘째, 이와는 대조적으로 여성은 개인 비용과 사치품을 제외하면 재정적으로 책임이 없습니다. 여성은 재정적으로 안전할 뿐만 아니라 부양을 받습니다. 아내라면 남편이, 어머니라면 아들이, 딸이라면 아버지가, 누이라면 오빠나 남동생이 부양자가 됩니다. 의지할 친척이 없는 경우에는 상속받을 것도 없고 유산을 남겨줄 사람도 없기 때문에 상속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의지할 데 없는 여성이 굶어 죽게 내버려두지는 않습니다. 홀로 남은 여성을 부양하는 것은 사회 전체와 국가 책임입니다. 여성은 도움을 받을 수도, 직업을 얻을 수도 있습니다. 여성이 버는 돈은 당연히 전부 자기 것입니다. 여성에게는 자기 외에 다른 사람을 부양할 책임이 없습니다. 남성은 같은 처지 있더라도, 가족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척이 있다면 부양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무리 어려운 처지에 있더라도 여성 책임은 한정되어 있는 반면에 남성 책임은 더 큽니다. 셋째, 여성이 남성보다 덜 상속 받는 것은, 일한 대가를 박탈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속 재산은 노력에 대한 결과가 아닌, 외부로부터 넘어온 가외 재산입니다. 이는 불로소득입니다. 상속 재산은 일종의 도움이므로 이슬람 규정에 따라 다급한 필요와 책임을 고려해 분배해야 합니다. 한쪽에는 온갖 재정적인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상속자가 있고 또 다른 쪽에는 재정적인 책임이 전혀 없거나 적은 상속자가 있습니다. 만일 여성의 몫을 완전히 박탈한다면, 여성 역시 고인의 친척이므로 이는 부당한 일입니다. 마찬가지로 언제나 여성에게 동일한 몫을 준다면 부양 책임이 있는 남성에게 부당할 것입니다. 이슬람은 남성이 가족의 필요와 사회적 책임에 응할 수 있도록 두 몫의 재산을 상속하게 합니다. 이와 동시에 여성에게도 개인적 필요를 충족하도록 한 몫의 재산을 상속해 왔습니다. 이 점에 있어서 이슬람은 여성에게 더 많은 호의를 보입니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전체적으로 보면 여성과 남성 권리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동등하다고, 평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꾸란 4:11 – 14, 176) […]
2024-05-15T17:49:41
Originally posted 2023-11-22 14:24:25. 꾸란과 초기 무슬림들 태도를 보면, 여성이 적어도 남성만큼 생명에 필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외래문화가 끼친 영향이 아니었다면 무슬림은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성과 남성 지위는 당연하게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연한 기정사실이었기에 아무도 문제 삼지를 않습니다. 이슬람은 다른 종교나 제도가 결코 허락하지 않았던 […]
2024-05-15T17:49:40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올바른 길을 우리에게 먼저 가르치신 다음, 나중에 그 책임을 지게 한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토록 이나 많은 선지자와 계시를 보내셨습니다.
2024-05-15T17:49:38
이슬람의 정치 생활은 사회경제 생활과 마찬가지로 건전한 영적・도덕적 기초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에 따라 인도됩니다. 이슬람 정치제도는 구조와 기능에서 그 목적이 독특합니다.
2024-05-15T17:49:37
하지만 이슬람에서는 인간을 무신론으로 이끄는 일 따위는 하지 않습니다. 사람을 당황하게 하거나 궁지에 몰아넣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오직 하나의 신 만이 존재할 따름입니다.
2024-05-15T17:49:36
기독교가 예수의 본래 가르침과 무관하다는 것을 오늘날 사람들이 점점 더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이세기 동안 역사가들이 연구 한 결과, 기독교의 ‘신비’는 더 이상 믿기지 않았지만, 현 교회에서 말하는 그리스도는 역사 속 예수와 전혀 무관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기 때문
2024-05-15T17:49:34
사람이 사는 사회라면 어느 곳이든 절대적 의미의 자유를 누릴 수는 없습니다. 사회가 제 기능을 발휘하려면, 어떤 식으로든 자유에 제한을 가할 수밖에 없습니다.
2024-05-15T17:49:33
잘못된 명칭은 이슬람을 일개 인간에 불과한 무함마드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고 이슬람 역시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채식주의 등과 다를 바 없는 또 하나의 ‘주의 ism’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2024-05-15T17:49:32
역사적으로 종교는 수없이 이용되고 오해를 받아 왔습니다. 착취와 압제의 수단으로 악용되고, 편견과 박해의 구실이 되는가 하면, 특권층과 백성 모두를 지배하는 권력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했습니다.
2024-05-15T17:49:31
Originally posted 2023-11-12 06:18:03. 1.이슬람에는 경건과 정의, 안전과 평화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적 자양분이 있습니다. 이를 사람에게 공급하도록 영적・윤리적 생활을 조직합니다. 이슬람의 영적 생활규정을 충실히 따른다면, 영적 성장과 성숙에 관한 한 가장 긍정적인 결과가 나타납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배 (2) 구빈세와 자선 (3) 단식 (4) 순례 (5) 샤하다(신앙고백) (6) 하나님과 하나님의 선지자를 향한 사랑. 하나님의 목적과 진리, […]
2024-05-15T17:49:30
Originally posted 2023-11-11 05:37:20. 진실한 무슬림은, 시간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지식과 계획을 세우고 실행할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에 무관심하지 않으시며 보고 계시지 만도 않습니다. 하나님의 법칙과 힘은 늘 작용하면서 광대한 영역의 질서를 유지하며 우주를 온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우신 분으로 늘 사랑하시며, 하시는 모든 일은 반드시 선한 동기에다 그 의미와 목적이 있습니다. 일단 이런 생각을 마음에 새긴다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비록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심지어 그것이 틀렸다는 생각이 들더라도 굳은 신앙심으로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믿고, 하시는 일이라면 모두 무엇이든 받아들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인식은 한정되어 있고 우리 생각은 개인적 경험에 바탕을 두고 있는 반면, 하나님의 인식은 무한하며 하나님의 계획은 보편적 차원에서 세우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운명론자가 되거나 무력해지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관심과 인간의 책임 사이에 경계를 그을 뿐입니다. 우리는 날 때부터 유한하고, 육신의 제약 속에 태어났습니다. 우리의 능력과 자유 역시 유한하고 제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자 하시게도 우리가 하는 일에만 책임을 물으십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이나 하나님께 속한 일은 우리가 책임지지를 않습니다. 제한된 속성과 책임에 맞게 제한된 능력을 우리에게 부여한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수행하실 때 시간을 초월하는 지식과 능력을 지니고 계시지만, 그와 같은 사실이 우리에게 주어진 한계 내에서 우리 스스로 일하는 것을 막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우리 스스로 생각하고 계획세우며 올바르게 선택하라고 권유를 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거나 원하는 대로 되지를 않는다고 해서 신앙심을 잃거나 정신적 긴장, 건강을 해치는 근심, 걱정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한번 해서 안 되면 다시 해 보아야 합니다. 그래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할 땐, 최선을 다했으니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경우는 우리 능력과 책임 한계 밖의 일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관계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바로 정명에 대한 믿음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시간을 초월 하시 노라는 섭리는 세상 현상을 예견하며, 세상 현상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정확히 일어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꾸란 18:29, 41:26, 53:33 – 62, 54:49, 65:3, 76:30 – 31) 진실한 무슬림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 만물을 무의미하게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인생에는 인간 육체적인 필요와 물리적 활동을 초월하는 더 웅대한 목적이 있다고 믿습니다. 삶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
2024-05-15T17:49:29
Originally posted 2023-11-10 04:29:32. 꾸란과 초기 무슬림들 태도를 보면, 여성이 적어도 남성만큼 생명에 필요한 존재일 뿐 아니라 남성보다 열등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외래문화가 끼친 영향이 아니었다면 무슬림은 이런 질문조차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성과 남성 지위는 당연하게 동등하기 때문입니다. 이는 당연한 기정사실이었기에 아무도 문제 삼지를 않습니다. 이슬람은 다른 종교나 제도가 결코 허락하지 않았던 […]
2024-05-15T17:49:28
Originally posted 2023-11-09 03:58:31. 바르나바 복음서(Gospel of Barnabas)는 예수께서 메시지를 전달한 약 삼 년 동안 대부분 시간을 그분과 함께 보냈던 한 제자가 기록 한 현존하는 유일한 복음서로 전해집니다. 그러므로 그는 네 권의 공관복음서 저자들과는 달리, 예수와 함께 직접 체험하였으며, 그분 가르침 모두를 알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바르나바스 예수와 그 가르침을 기억하여 적어놓은 것인지, 사건과 설교내용이 일어났던 대로 기록한 것인지, 혹은 예수께서 지상을 떠난 뒤 가르침이 일부 변질되거나 분실될까 두려워 이 복음서를 저술한 것인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지만 그가 요한이나(John), 마가(Mark)와 함께 사이프러스(Cyprus)에서 돌아온 뒤에 이 복음서를 저술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이 두 사람은 함께 여행을 떠났는데 이때는 예수가 지상을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마가와 함께 가겠다는 바르나바 동행을 할 수가 없다며 거절 한 타르수스(Tarsus)의 바울(Paul)이 이 두 사람과 결별 한 뒤였습니다. 이 복음서가 언제 저작되었건 간에 네 권의 공관 복음서처럼 수 개 국어로 변역 되어 전해졌으나, 적어도 이 복음서만이 예수 생애를 직접 목격한 사람이 적은 내용입니다. 바르나바 복음서는 서기 325년까지 알렉산드리아 지방 교회들이 정경 복음서(Canonical Gospel)로 인정하였습니다. 이 책은 예수 출생 이후 처음 1, 2세기 동안 회람되었다는 사실을 신의 유일성을 지지한 이라네우스(Iraneus)가 적은 기록을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그는 바울이 예수의 본래 가르침에다 이교인 로마 종교와 플라톤 철학을 융합시킨 책임이 있다고 비난하며 그에게 반대했는데 자기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 바르나바 복음서를 많이 인용하였습니다. 서기 325년에 저 유명한 니케아 종교회의(Council of Nicea)가 열렸습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바울 기독교 공식 교리로 선포되었으며, 이 결정 결과, 당시 300권 이상이던 복음서들 중에서 네 가지만이 교회에서 공식으로 인정한 복음서로 선정되었습니다. 바르나바 복음서를 포함한 나머지 복음서들은 모두 완전히 없애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또한 히브리어로 기록된 모든 복음서도 마찬가지로 없애게끔 했으며 인정받지 못한 복음서를 소지할 때는 누구라도 사형에 처할 것이라는 포고문이 발포되었습니다. 이것은 삼위일체와 모순되는 본래의 예수 가르침을 적은 모든 기록을, 인간 기억이든 서적이든 간에, 모조리 말살하려는 매우 조직적인 최초 시도였습니다. 바르나바 복음서 경우, 이런 명령이 완전하게 성공하지는 않았으며, 이 책이 계속해서 존재했다는 사실을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습니다. 다마수스 교황(Pope Damasus)(304-384 A.D.)은 366년 교황이 되고 난 뒤 바르나바 복음서를 읽지 말라는 칙령을 내렸다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칙령을 395년에 사망한 세사리아(Caesaria)의 주교 겔라수스(Gelasus)가 지지를 하였습니다. 그는 이 복음서를 소위 외경이라는 목록에 포함시켰습니다. 외경(Apocrypha)이란 단순히 “사람들로부터 숨겨진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단계에서는 이 복음서를 일반인이 접할 수 없었으나, 교회지도층에서는 아직도 참고로 할 수가 있었습니다. 사실 그 교황은 383년에 바르나바 복음서 사본 하나를 입수하여 개인 서가에 보관하였습니다. 이 복음서에 관해 또 다른 여러 칙령을 내렸는데, 382년 서로마 교회 칙령으로, […]
2024-05-15T17:49:27
Originally posted 2023-11-08 03:35:45. 바르나바와 초기 기독교인들 바르나바(Barnabas), 혹은 바르나베(Bar-nabe)란 ‘위안의 아들’이나 ‘권고의 아들’을 뜻하는데, 그는 사이프러스에서 유대인으로 출생하였습니다. 그를 또 요세(Joses)나 요셉(Joseph)으로 부르기도 했는데, 새로운 이 이름은 예수 제자들이 붙여준 것입니다. 네 권의 공관 복음서에는 바르나바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지만, 그는 예수가 사라진 뒤 제자들의 한 지도자였음을 신약성서 다른 책에서 명백히 알 수가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예수의 가르침을 고수하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며, 개혁신자들과 특히 타르수스의 바울에 대해 반대한 사람입니다. 사도행전을 쓴 누가는 바울의 주치의였으므로 바울이 주장하는 견해를 지지했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바울에 대한 이야기를 설명하면서 바르나바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언급했습니다. 불행히도 바울 교회가 삼위일체 교리를 채택한 뒤, 이 교리에 어긋난 모든 기록을 없애려고 ‘사도들 여행기와 가르침서(The Travels and Teachings of the Apostles)’ 를 파손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바르나바와 초기 기독교인들에 관해 알려진 많은 사실이 손실되었습니다. 삼위일체론 자 들이 이런 정책을 펼쳐 예수의 사명 중에 바르나바에 대한 언급이 이상하게도 네 권의 복음서에서 전혀 나오지 않은 것이며, 누가에 따르자면, 예수가 사라진 뒤 누구에게도 못지 않은 중요한 인물이 바울과 불화가 생겨 결별하자마자 역사의 페이지에서 사라진 이유를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르나바는 예수가 임무를 시작할 때부터 그분과 함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의 복음서에서 예수에 대한 큰 충성과 사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바르나바는 계속 예수와 동반하였을 뿐 아니라, 그분 가르침에 열중하였기 때문에 곧 명성을 얻었으며, 사도행전에서는 자기 스승으로부터 배운 것을 남에게 전할 능력이 충분한 사람이라고 분명하게 이 명성을 입증합니다. 제자들이 붙인 이름은 위안과 격려의 근원인 대변인으로서 그의 위치가 어떠했는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하고 관대하였으며 예수를 만난 뒤 소유한 것 모두를 팔아 그분 추종자들에게 쓰라고 주었습니다. 예수와 제자들이 그에게 향한 애정은 그를 칭하는 여러 이름에서도 알 수가 있습니다. 제자들이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은 뒤부터’ 예수와 꾸준히 함께 한 사람들 중에 유다 지방에 사도를 선발하기로 하였을 때, 두 사람을 뽑았습니다. “하나는 바르사바(Barsabas)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Justus)라고 하는 요셉(Joseph)이요, 하나는 맛디아(Mathias)라.”(사도행전 1:22-23) 예수께서 살아 계실 때 그분이랑 동반한 사람 중 성경에 언급되어 있는 요셉은 바르나바라고 널리 알려진 사람 말고는 달리 아무도 없습니다. 그리하여 굿스피드가 우리에게 말한 대로, 한 때 극약을 마셨으나 아무런 해도 입지 않은 인물인 바르사바가 바로 바르나바일 가능성이 매우 크고. 만약 그렇다면, 바르나바가 처음 열 두 사도 중 한 사람은 비록 아니었어도, 분명히 처음 70제자 중 한 사람이었다 점은 틀림이 없습니다. 처음 열 두 제자에 적합한 사람으로 여겨야 한다는 주장은 예수의 모친 마리아가 임종하면서 제자들을 불렀을 때 바르나바도 거기에 간 사람이라는 전승으로 뒷받침됩니다. […]